차 안에서 들은 노래 한 곡, 인생이 잠시 멈춘 순간

 

차 안에서 우연히 들은 노래 한 곡이, 생각보다 깊이 내 삶에 박혀버린 날이 있었습니다.
그날은 뭐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퇴근길이었어요.
하루 종일 쌓였던 피로에다 밀리는 교통, 붉은 브레이크등 불빛 줄이 이어지는 저녁 도로.
창밖엔 가을비가 조용히 내리고 있었고, 저는 아무 말 없이 운전대를 잡고 있었습니다.

라디오에서는 평소처럼 DJ의 멘트가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마음은 이미 멍해져 있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노랫말 한 줄이 정적을 뚫고 제 마음속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대는 나의 작은 우주였죠..."

순간,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어떤 감정이 있었습니다.
무언가가 나를 붙잡고 있던 것처럼, 그날 그 노래는 그렇게, 아무런 예고 없이 제 안에 스며들었죠.

 

1. 기억은 언제나 차 안에서 시작된다

운전을 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순간, 마음속 깊이 묻어둔 감정이 문득 올라오는 때가 있습니다.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며 무뎌진 감정들, 잊었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순간들조차도 차 안이라는 고립된 공간 안에선 너무 쉽게 깨어나곤 하죠.

왜일까요? 아마도 차 안이라는 곳이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동시에 확보되는 드문 장소이기 때문일 겁니다.
특히 음악이 흐르고, 창밖 풍경이 서서히 흘러갈 때면 그 리듬에 따라 마음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죠.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멜로디, 뒤차의 헤드라이트가 유리창에 반사되는 빛, 비 오는 날 천천히 움직이는 와이퍼 소리.
그 모든 것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기억의 깊은 서랍을 조용히 여는 열쇠가 되어줍니다.

저에게 그날은 정확히 그런 날이었습니다.

별다른 사건도 없이 멍하니 앞을 보며 운전하던 어느 순간, 라디오에서 흐르던 노래 한 곡이 아주 오래전의 한 장면을 다시 꺼내 보여주었죠.
오래전 사랑했던 사람과 마지막으로 나눈 인사, 그 이후로 한 번도 떠올리지 않았던 말투와 표정이 놀랍도록 선명하게 떠올랐어요.

이런 기억의 복원은 차 안에서만 가능한 마법 같았습니다.
바로 내 공간, 내 속도, 내 시간 속에서만 가능한 감정의 귀환이랄까요.

 

2. 그날, 내 마음을 흔든 단 한 곡

그날 라디오에서 우연히 흘러나온 곡은 ‘별 보러 가자’였습니다.
그 노래는 이전에도 몇 번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날은 유독 달랐습니다.
가사 하나하나가 가슴을 꾹꾹 눌러왔고, 특히 후렴구에 이르자 울컥하는 감정이 목 끝까지 차오르더군요.

음악이라는 게 참 신기합니다.
같은 노래라도 듣는 ‘그 순간의 나’에 따라 전혀 다른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그날 저는 지쳐 있었고, 감정적으로도 무언가 비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공백을 메우기라도 하듯, 그 노래는 아주 조용하게 제 안으로 스며들었어요.

“별 보러 가자”는 단순히 낭만적인 문장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제게 '지금 여기가 아니어도 괜찮다', '잠깐 멈춰도 괜찮다'는 위로처럼 들렸어요.
그리고 그런 위로는, 지친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퇴근길 차 안에서 너무도 절실하고 따뜻하게 와닿았습니다.

사실 많은 분들이 운전 중 우연히 들은 노래 한 곡에 감정이 흔들리는 경험을 한 번쯤은 해보셨을 겁니다.
어떤 노래는 첫사랑을 떠올리게 하고, 어떤 노래는 가족이나 친구와의 지나간 시간들을 불러오기도 하죠.

운전 중 들은 음악이 유독 더 감성적으로 다가와요.
무엇을 해야 한다는 의무도, 누구와 이야기해야 한다는 부담도 없이 그저 나와 내 감정만이 존재하는 공간에서 들리는 노래 한 곡.

그날, 제 마음을 흔든 그 한 곡도 어쩌면 노래 자체보다도, 그걸 들었던 ‘그 순간’이 더 특별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3. 운전 중 떠오른 가족 여행의 따뜻한 한 장면

운전을 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순간, 마음 깊은 곳에 묻어뒀던 장면이 문득 떠오르곤 합니다.
특히 혼자 도로 위를 달릴 땐 세상과 살짝 분리된 그 고요함 덕분에 오히려 더 생생하게 어떤 기억이 되살아나죠.

그날도 평소처럼 라디오를 켜둔 채 운전하고 있었습니다.
창밖은 맑았고, 라디오에선 익숙한 드라이브송이 흘러나오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 노래의 후렴이 시작되던 순간, 제 머릿속엔 가족과 함께 떠났던 한 여름의 여행이 불쑥 떠올랐습니다.

몇 년 전, 무작정 강릉으로 떠났던 가족여행이었습니다.
차 안엔 부모님과 동생이 함께 탔고,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고 창문은 살짝 열어 바닷바람을 느끼며 달렸던 기억이 생생했습니다.

당시엔 누가 노래를 고르겠다고 서로 휴대폰을 뺏고, 아빠는 또 옛날 노래를 틀겠다고 하시고, 엄마는 옆에서 “이 노래는 너무 졸려~” 하며 볼륨을 줄이고. 차 안은 말 그대로 ‘소란한 평화’ 그 자체였죠.

그때는 그냥 시끄럽고 정신없다고만 느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웃음이 나는 따뜻한 순간들이었습니다.

운전대 위에서 그 장면이 떠오르니 괜히 혼자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 속 풍경들이 지금의 내 마음까지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걸 느꼈죠.

자동차는 단지 이동 수단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추억을 담아두는 움직이는 타임캡슐이었고, 운전이라는 반복 속에서 그 속에 들어 있던 웃음과 대화들이 문득문득 재생돼요.

그날 제가 떠올린 가족여행도 분명 제 마음 어딘가에 소중하게 저장되어 있었던 거겠죠.

 

4. 차창 밖 풍경과 노래가 하나처럼 느껴질 때

강릉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던 그날, 차창 밖으로는 햇살이 반짝였고, 바다는 옆자리처럼 가까이에서 함께 달렸습니다.
그날은 유난히 하늘이 맑았고, 창문을 조금 열면 짭조름한 바닷내음이 그대로 차 안으로 들어오던 그런 날이었습니다.

라디오에서는 여름 감성 가득한 노래가 흘러나왔고, 운전하던 저도 모르게 박자를 타고 있었죠.
엄마는 따라 흥얼거리고, 동생은 창밖 풍경을 찍느라 바빴습니다.
그리고 아빠는 운전석 옆에서 “이 노래는 예전에 나도 많이 들었어”라며 살짝 감상에 젖은 표정을 지으셨죠.

그 순간이 너무 영화 같았습니다.

무대 조명도, 편집도 없었지만 그때 그 풍경과 노래, 그리고 가족의 모습은 한 편의 짧은 뮤직비디오처럼 제 기억에 박혀버렸습니다.

어떤 장면은 굳이 특별하지 않아도 오래 남습니다.
그날처럼 바람 좋고, 음악 좋고, 가족 모두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속도로 움직이고 있을 때면 차 안이라는 공간이 그냥 차가 아닌, 하나의 추억 상자처럼 느껴지곤 하죠.

그리고 이런 순간은 돌아보면 더 소중해집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겠는 ‘별거 없었지만 행복했던 순간’의 가치.

운전을 하며 그런 기억이 떠오를 때면 괜히 어깨에 힘이 빠지고, 마음이 조용히 웃고 있는 걸 느끼게 됩니다.
노래와 풍경이 겹칠 때, 우리는 그 안에서 자신만의 한 장면을 완성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5. 노래는 끝났지만 감정은 그대로 남는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그 노래는 어느새 조용히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차 안의 분위기나 제 마음속 여운은 그 음악이 끝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듯했어요.

창밖엔 여전히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뒤좌석에서 엄마와 동생의 대화가 잔잔하게 들려왔죠.
어느 순간부터는 가족 모두가 말을 멈춘 채 조용히 도로를 바라보며 각자의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 노래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지만, 그때의 감정은 고스란히 차 안에 남아 있었습니다.

사실 이런 여운은 음악을 들을 때만이 아니라 운전하면서 느끼는 차 안 특유의 잔향 같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속도를 줄이고, 눈앞의 풍경이 조금씩 변하는 그 시간 속에서 우리 마음은 생각보다 많은 걸 받아들이고 기억해두는 것 같아요.

그날 제게는 ‘별 보러 가자’라는 노래가 좋은 멜로디를 넘어, 가족과 함께 보낸 하루를 마음 깊숙이 저장하는 매개체가 되었어요.

그날의 햇살, 바람, 창밖 풍경,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 아무 말 없이 함께 있던 그 조용한 평화.
그 모든 게 한 곡의 노래 덕분에 지금도 또렷하게 떠오릅니다.

운전 중에 그런 여운이 남는 날은 목적지에 도착해도 쉽게 차 문을 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저 시동을 끄지 않은 채 조금 더 앉아 있고 싶은 마음.
그 조용한 시간 속에서 조금 전의 감정을 천천히 정리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간직하는 일.

노래는 끝났지만, 그 순간의 감정은 여전히 내 마음 안에서 작게 재생되고 있었습니다.

 

6. 그래서 나는 운전할 때 ‘침묵’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날 이후로 저는 운전할 때 웬만하면 차 안을 조용히 두지 않습니다.
음악이 항상 켜져 있죠.
라디오든, 플레이리스트든, 익숙한 멜로디가 흐르고 있어야 운전이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하루의 감정을 정리하는 시간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가족과 함께했던 여름 여행 때도 그랬습니다.
창밖 풍경만으로도 충분히 좋았지만, 그 순간을 한층 더 기억에 남게 만든 건 차 안에 흐르던 음악이었습니다.

그 노래가 흘러나오는 동안 우리 가족은 괜히 따라 부르며 웃었고, 엄마는 어릴 적 이야기를 꺼냈고, 아빠는 휴게소에 들르자며 코스를 벗어났죠.
모두가 함께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 그게 바로 음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지금도 혼자 운전할 때 우연히 그때 들었던 노래가 나오면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집니다.
그리고 마음이 조금 느슨해지고, 속도도 살짝 줄어들죠.

운전 중에 흘러나오는 음악은 단지 배경음이 아닙니다.
그건 감정을 풀어주는 열쇠고, 기억을 소환하는 신호이자, 지금 이 순간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작은 장치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내비게이션보다 먼저 음악부터 켭니다.
달리는 길 위에서 또 어떤 감정이 찾아올지 모르니까요.

 

7. 삶이 힘들 땐, 내 차가 나만의 작은 공연장이 된다

누구나 그런 날이 있습니다.
일은 손에 안 잡히고, 사람들과 부딪히고, 괜히 혼자 있고 싶은 날.
저에게 그런 순간이 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소는 다름 아닌 제 차 안입니다.

엔진을 켜고, 아무 목적지 없이 그냥 도로에 나섭니다.
창문을 살짝 열고, 익숙한 노래를 플레이리스트에서 꺼내 틀죠.
그러면 차 안은 어느새 조용한 무대가 됩니다.
관객도, 조명도 없지만 그 안에서 저는 제 감정을 천천히 풀어내고, 지친 하루를 조금씩 정리해 나갑니다.

가족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기억이 있습니다.
모두가 뒷좌석에서 조용히 잠들었고, 저 혼자 운전대를 잡은 채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천천히 도로를 달렸습니다.

그때 차 안은 참 조용했지만, 마음속은 아주 풍요로웠습니다.
“지금 이 순간, 참 좋다”는 생각이 스르르 들었죠.

차 안은 나만의 공간입니다.
누구의 간섭도 없이 내 기분, 내 속도, 내 선택으로 채워지는 곳.
그 안에서 좋아하는 노래 한 곡을 크게 틀고 따라 부르거나, 조용히 들으며 창밖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위로는 저절로 찾아옵니다.

우리가 늘 공연장을 갈 수는 없지만, 마음이 지쳤을 땐 내 차 안에서만큼은, 누구보다 좋은 자리를 가진 관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저는 오늘도 내 감정을 노래에 실어 보내며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8. 마무리 – 나만의 ‘감성 정차 구간’을 갖는다는 것

요즘은 다들 너무 바쁘게 달립니다.
하루 종일 일하고, 사람들과 부딪히고, 그 와중에 마음속 이야기 하나 꺼내볼 시간조차 없이 지나가는 날도 많죠.

하지만 그런 삶 속에서도 누군가에게는 산책이, 또 누군가에게는 밤늦은 카페가 그 감정을 잠시 내려놓는 공간이 되어주듯, 저에겐 바로 ‘차 안’이 그런 곳이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떠났던 여행도 그렇고, 혼자 도로 위를 달리며 들었던 수많은 노래들도 그렇고, 그 모든 순간들이 저에게는 하나의 ‘감성 정차 구간’이 되어주었어요.

그 공간 안에서, 저는 속도를 줄이고, 창밖을 바라보며 조용히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어쩌면 목적지는 중요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순간의 감정이 목적지였고, 그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던 공간이 바로 내 차 안이었으니까요.

그리고 그 안에서 들은 단 한 곡의 노래가, 그날의 공기와 사람들의 목소리, 창밖 풍경과 함께 제 삶을 다시 바라보게 만들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께도 그런 ‘정차 구간’이 하나쯤 있었으면 합니다.
꼭 멀리 떠나지 않아도, 꼭 무언가 대단한 일이 없어도, 그저 음악 한 곡과 함께 잠시 멈춰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그 공간.

저는 그걸 ‘차 안의 감성 정차 구간’이라 부릅니다.
당신은 어디서 멈추고 계신가요?

 

 

이런 순간들을 글로 기록하며 다시 꺼내보는 것도 또 하나의 감정 여행 같습니다.
차 안에서 마주한 감정, 그리고 그 속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다면
‘자동차 감성 칼럼’ 카테고리에서 더 많은 이야기들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